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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 / un

'에.루.샤.디'의 시대, 디올은 샤넬을 넘어설 수 있을까

by 임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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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에도 급이 있다. 우리는 그 급의 꼭짓점에 있는 세 브랜드를 가리켜 '에.루.샤' 라 불렀다. 에르메스 Hermes, 루이비통 Louis Vuitton, 그리고 샤넬 CHANEL의 줄임말이다. 영원히 부서지지 않을 것 같던 3강 구도가 최근 한 브랜드의 성장으로 위태로워졌다. 바로 디올 DIOR이다. 최근 매출 증가 속도를 감안했을 때 향후 3년 사이  샤넬을 따라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등장했다.

패션 온라인 저널 비즈니스 오브 패션 Business of Fashion은 디올 DIOR의  성장 비결을 분석한 리포트를 최근 발행했다. 해당 리포트에 따르면, 디올은 LVMH가 모든 비즈니스 권한을 가진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패션 부문에서 약 3배의 성장을 기록했다. 패션에서  약 70억 유로, 뷰티까지 합산하면 총 100억 유로 규모로 한화 기준 약 14조 원의 매출 규모다. 해당 매출 추산치는 2021년 기준 에르메스 Hermes와 구찌 Gucci 연간 매출 추산치를 남겼으며, 루이비통과 샤넬 매출 추산치의 약 3분의 2를 따라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해당 매출은 2021년 기준이다. 럭셔리 비즈니스가 성장한  2022년은 더 높은 매출이 예상되는 점에서 디올 DIOR의 성장 속도는 돋보인다. 디올은 어떤 점이 달랐을까. 그리고  '에.루.샤' 3강 구도를 무너뜨리고 4강 구도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을까. 오늘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해 정상을 노리는 디올 DIOR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뉴 룩 New Look'을 창시한 크리스찬 디올의 메종

지금의 디올 DIOR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브랜드와 비즈니스 역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디올은 창립자인 크리스찬 디올이 1946년 프랑스 파리에서 설립한 브랜드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침체된 사회와 패션업계에 상징적인 '뉴 룩 New Look'을 선보이며 여성 패션산업에 혁신을 불러왔다. 전쟁 이후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 낸 이들은  1948년 미스 디올 Miss Dior 향수를 런칭해 뷰티 카테고리를 일찌감치 확장했다. 이후 뷰티, 패션, 그리고 라이센스 사업을 통해 글로벌 브랜드로 나아갈 초석을 다졌다.

크리스찬 디올은 1957년 브랜드 창립 12년 만에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짧은 기간에 디올 DIOR의 근간을 이루는 아카이브를 구축해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 이후에는 모기업 Boussac을 통해  브랜드를 전개한다. 당시에는 디자이너의 사망 이후 브랜드가 운영되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 디올이 한 디자이너의 이름이 아닌 독립된 브랜드로 다시 태어난 순간이다.

이후 디올 DIOR은 이브 생 로랑, 지안 프랑코 페레, 존 갈리아노, 라프 시몬스 등 당대 패션 업계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를 통해 전개된다. 약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창립자와 후배 디자이너들을 거치며 꾸준히 아카이브를 쌓았다. 존 갈리아노 John Galiano가 구축한 '아트'에 가까운 럭셔리 쿠튀르 하우스 브랜딩과 에디 슬리먼 Hedi Slimane이 창조한 디올 옴므 Dior Homme의 미학은 지금까지도 디올 DIOR의 상징적인 순간으로 회자된다.

'원 디올 One DIOR' 전략 아래 일관된 방향성

70년이 넘는 아카이브를 가진 디올 DIOR은 여성, 남성, 오트 쿠튀르와 뷰티 카테고리를 모두 갖춘 플래그십 브랜드로 성장했다. 하지만  '에.루.샤'  안에는 들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상징성 대비 낮은 매출 규모가 꼽혔다. 복잡한 브랜드 소유 구조 및 통일되지 못한 커뮤니케이션도 약점 중 하나였다. 디올은 모두가 알고 있는 브랜드였다. 하지만 어떤 브랜드로 인식해야 하고, 무엇을 사야 하는지 소비자에게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디올의 숙제는 이곳에 있었다.

변화는 2017년 LVMH 그룹이 디올 패션 하우스의 전권을 가지며 찾아왔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대대적으로 변경하며 하나의 브랜드 테마 아래 모든 라인이 기획되는 목표를 가지게 된다. 다음 단계는 이를 완성시킬 드림팀 구성이었다. 이를 위해 CEO 자리에 펜디 FENDI를 새롭게 탈바꿈시킨 피에트로 바카리가 임명된다.  여성 라인 디자이너로는 발렌티노 Valentino 출신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남성복은 루이비통 Louis Vuitton의 스타일 디렉터였던 킴 존스 Kim Jones가 자리했다.

변화의 시작은 여성 라인이었다.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런웨이를 통해 디올의 여성상과 변화의 메시지를 표출했다. 2017년 S/S 데뷔 런웨이에는 'We Should All Be Feminists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모델이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이후에도 현대 여성을 지지하고 여성 커뮤니티를 향해 손을 내미는 노력은 이어졌다. 여성 아티스트와 포토그래퍼를 기용했고, 인도의 전통 자수 커뮤니티 등과의 협업도 적극적이었다.

여성을 향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뒤에는 정교한 MD 구성이 이어졌다.  소비자가 구매할 만한 아이템을 적정 가격에 제시해야 했다.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와 CEO 바카리는 이 지점에 새로운 디자인과 가격대의 MD를 구성한다. 대표 아이템은 2000년대 히트한 새들백의 리뉴얼이다. 현대적인 디자인의 새들백은 시장에 성공적으로 데뷔한다. 이후 북 토트, 오블리크 모노그램 캔버스 등 고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라인업을 선보이며 선택지를 넓혔다.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유입된 고객에게 구매할 만한 아이템을 제안하는 것. 이를 통해 디올은 고객을 유입해 매출을 이끌어내는 컨버전을 극대화한다.

균형감 있는 글로컬라이제이션 Glocalization 전략 역시 유효했다. 한국에서는 이화여대를 배경으로 런웨이가 펼쳐졌고,  디올 성수 팝업 프로젝트로 젊은 고객층에게 다가갔다. 현대적인 디올의 여성상을 전달함과 동시에 젋은 타깃층에게 접근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성공적인 마케팅을 통해 업계에서는 디올의 2022년 국내 매출이 1조를 넘겼을 것으로 추청하고 있다. 국내 연 매출 1조를 돌파한 단일 브랜드는 현재까지 루이비통과 샤넬이 유일하다.

맨즈웨어의 활약 역시 돋보였다. 에디 슬리먼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남성 라인은 디자이너 킴 존스 Kim Jones 영입 이후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적절히 혼합한 쿠튀르적 터치, 브랜드의 상징인 바 자켓에서 영감을 받은 디테일,  꽃과 파스텔컬러를 반영한 젠더리스 패션이 런웨이에 등장했다. 트렌디한 스트리트 브랜드와의 협업도 이어졌다. 나이키와 협업한 에어조던 1 스니커즈는 2천 유로가 넘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전 세계 품절을 기록했다.

킴 존스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였다. 디올의 새로운 브랜드 전략에 따른 패션 라인 전개와 새로운 고객층 발굴이다. 여성 라인에서 히트한 새들백을 남성 사이즈로 개편하고, 오블리크 패턴을 활용한 스니커즈와 레디-투-웨어, 그리고 백 라인으로 여성 라인과의 통일성을 추구했다. 한 편 LVMH 소속 브랜드 리모와 RIMOWA와의 협업 등 카테고리와 업계를 넘나드는 이슈를 통해 새로운 고객층을 유입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디올 남성 라인은 2021년 기준 약 12억 유로, 한화 1조 6천억 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한다.

팬데믹 속 돋보인 이커머스의 성장

​이커머스 역시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2010년대 중반까지 럭셔리 이커머스는 큰 환영을 받지 못했다. 럭셔리 브랜드는 온라인에서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존재했기 때문. 디올  DIOR 역시 그런 브랜드 중 하나였다. 이들은 리테일 채널을 통한 디지털 팝업 등 보수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국내 역시 2016년 디올 온라인 부티크를 런칭했지만 본격적인 세일즈 채널은 아니었다. 온라인에 공개된 제품 수는 한정적이었고, 배송과 운영 역시 오프라인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이뤄지는 등 부가적인 역할에 머물렀다.

본격적인 투자는 2017년부터 진행된다. 새로운 CEO 아래 마이테레사 MyTheresa 출신의 디지털 디렉터 Jens Riewenherm가 영입되면서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등 디올의 메인 마켓을 포함한 12개국에 온라인 부티크를 런칭했다. 이들에게 온라인 스토어는 단지 오프라인을 미러링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제품 수가 한정된 다른 럭셔리 브랜드와 다르게  6,000여 개가 넘는 제품을 제공했다. 디지털 플래그십 스토어라는 이름에 걸맞는 공격적인 접근이었다.

이 전략은 팬데믹 시즌에 빛을 발했다. 온라인에 보수적으로 접근했던 다른 브랜드들이 이커머스를 정비하는 사이, 준비된 디올은 극적인 성장을 이뤘다. 약 4억 유로, 한화 5천억 규모로 커진 비즈니스에는 일관된 디지털 마케팅 전략 역시 유효했다. 나이키와 협업한 에어조던 1의 드로우가 단적인 예다.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마케팅을 통한 고객들의 관심과 트래픽을 온라인 스토어를 통해 정착하도록 유도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동일한 선상으로 생각할 것. 당연한 말이지만 그동안 럭셔리 브랜드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에.루.샤.디' 안착을 위한 미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강화와 디자인 업데이트, 그리고 이커머스 확대 전략은 디올 DIOR 브랜딩과 매출 증가에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이들의 2022년 매출은 약 120억 유로, 한화 16조 원 규모로 업계는 예측한다. 이는 그동안 경쟁 브랜드로 언급되던 루이비통과 샤넬의 연간 매출에 비교될만한 수치다. 가파른 매출 상승은 과연 럭셔리 브랜드 3강 구도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 본 게임은 2023년과 2024년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럭셔리 시장은 풍부한 자금 유동성과 디지털의 발달로 유례없는 호황기를 누렸다. 디올 DIOR 역시 이 기간을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2023년은 다르다.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예견되어 있기 때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그리고 중국 시장의 불확실성은 럭셔리 마켓 역시 피해 갈 수 없는 숙제다.

그동안 '에.루.샤'의 철옹성은 어려운 시기에 더욱 빛났다. 모든 브랜드가 고전할 때 이들은 성장했고 그때마다 브랜드 가치는 돋보였다. 2023년과 2024년에도 디올 DIOR의 매출 성장이 이어진다면 이는 브랜드가 4강 구도에 안착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대로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한다면 '에.루.샤.디'의 4강 구도는 단지 이들의 희망에 불과할 것이다.

디올 DIOR은 향후 3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들에게 2023년은 그동안의 성공 공식을 확장하는 한 해가 될 예정이다. 한층 견고해진 브랜드 전략 아래 규모 있는 마케팅과 매출 전략이 가능해졌다. 한층 높아진 매출 규모와 영업 이익 덕분에  오픈 예정인 신규 매장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뜨겁게 타오른 브랜드는 순식간에 식어버릴 수 있다. 성장 동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고객들에게 브랜드 피로도를 줄이는 일. 디올의 가장 큰 미션 중 하나다. 이 허들을 넘는다면 디올은 럭셔리 브랜드 4강 구도로 판을 새로 짜게 될 것이다.

디올은 이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수 있을까. '에.루.샤.디'를 향한 이들의 2023년과 2024년 행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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